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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전념하고 있다는 전제

by 나나사 2022. 1. 27.

 

 

전념

무한 탐색의 시대에 꾸준히 전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와 세상을 바꾸는 『전념』의 놀라운 힘아마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늦은 밤, 볼거리를 찾아 넷플릭스를 뒤적이며 수많은 선택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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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념 

피트 데이비스 지음/ 심유희 옮김


나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를 살고 있는 선택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 둔 사람이다. 

액체 근대란 지그문트 바우만이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두길 원치 않으며, 그래서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라 칭한다.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이라는 문장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선망하는 사람들 미래를 위해 현재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고 포기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을 멋있는, 혹은 꽤 괜찮은 삶이라 생각하고 살았고 살고 있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다.' 라는 말은 내가 다른 어떤 기회를 선택할 때 매우 유용하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존경하고 선망하는 삶은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성장하고 성공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다. 우리는 그들을 더 큰 감동과 존경으로 바라본다. 그들을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한편 '나는 아직 나의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고 생각하며 수 없이 도전하고 다른 탐색을 진행한다. 

 

 

P39. 오늘 날 우리는 무언가를 확신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무엇을 믿을지, 누구를 신뢰할지는 물론, 바로 내 옆에 어떤 것들이 남아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끊임없이 하루에도 수 십번 씩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무언가 확신을 얻고, 무엇을 믿고, 바로 내일 내 옆에 어떤 것들이 남아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액체 근대 속에서 우리는 온전히 한 곳에 전념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속에서 전념하고자 하는 누군가는 다른 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의 두려움과, 관계를 형성함으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과 통제감을 잃을 것에 대한 유대의 두려움, 전념하게 되면 그로 인한 책임감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전념한 적이 없었던가? 내가 전념하고자 노력했던 적은 없었을까?

 

있었다.

나는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목적과 잘 맞는 정당을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해서 정당에 가입했고, 활동했다. 하지만 나의 전념에서 가장 큰 두려움이 발동됐다. 유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P177. 유대는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노출한다. 다른사람들과 함께 전념하려면 내 강점, 약점, 능력, 관심 드 나에 대한 많은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중략- 수필가 팀 크라이더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받길 원한다면, 내 치부를 드러내는 굴욕적인 시련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나를 드러내길 꺼리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 알게 되는 것을 껄끄럽게 여긴다. 이는 이 사회가 이미 익명성이 매우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일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사회를 내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정당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될 쯤에 기타 사유를 대며 탈당했다. 나에게 이런 탈퇴의 형식은 반복적이었다. 관계가 형성되고 친밀해지는 과정을 견디기 어려웠고, 그것은 공동체에서 도망치는 이유가 되었다. 

 

p182.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와 유대를 맺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까봐 두려워서 유대 맺기를 꺼린다. -중략- 이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보편적인 사랑을 얻으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낯설게 느낄 만한 특이성을 전부 제거한다. 

 

특이성을 전부 제거하면 평범해지고 평범해지면 오래도록 공동체 속에서든, 유대관계 속에서든 지속적으로 활동하거나 관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존재하지 않음'의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공동체와 유대관계를 불편하게 느끼고 벗어나려고 한다. 

 

나는 어떤 유대와 공동체에 전념을 했으며, 왜 끝까지 전념하지 않고 포기하게 되었는지 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일단 전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만난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바탕이 되어 있었던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성공 조차 확신할 수 없는 일을 진행하고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현재의 나에게 전념하자. 

나의 활동에, 나의 생활에, 나의 몫에 전념하다 보면 내가 속한 공동체에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235. 정치와 문화에 대해서도 부자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특정 분야에서만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지위를 얻는 길이 됐다.

P239. 돈이 최고 목표인 문화에서는 사람조차도 얼마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자원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돈이 목표인 문화이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지위를 얻는 길이 된 사회가 되었다.

이 속에서 우리가 전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용되고 버려지더라도 먹고 살아야 할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찾는 탐구활동을 끊임없이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념할 수 있는 기회 조차 얻을 수 없다. 

 

돈이 목적과 지위인 사회만 되었는가?

 

P245. 마이클 샌델의 말 처럼 과거의 우리에게 자유는 "시민으로서 우리의 집단적인 밀도를 다스리는 힘을 형성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엇으나, 지금은 "접근할 수 없는 익명의 관료체제가 제공하는 선택지 중에 원하는 것을 고르는 능력"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자유 또한 바뀌었다. 우리는 정치인을 투표로 선택하고, 수 많은 법안의 과정에 참여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A 또는 B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단순화 되었다. 사람들의 이익구조와 삶의 방식은 다양해졌음에도 누군가는 권력을 위해, 누군가는 지위를 위해, 누군가는 명예를 위해 다수에게 제한된 사회를 형성하고 그것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런 사회를 나 하나의 전념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사회 안에서 각자의 전념으로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할까?

 

액체 근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애착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전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애착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각자의 자리와 역할에 전념하고 있다. 

액체 근대로 변화한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하면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흑인 노예 해방, 동성애 결혼 합법 등의 눈에 보이는 특정한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나의 다음 세대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전념하고 있다는 전제가 조금 부족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이 지구가 더 나빠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선거와 정치에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같은 의견의 사람들에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주는 방식으로 우리는 다르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고 더 나아지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