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겨읽기

달과 6펜스/태교 이전에 나에 대해 생각해보기

by 나나사 2021. 12. 24.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 폴 고갱의 생애에서 테마를 얻은 작품.

book.naver.com


어느 독후감 공모에 제출했으나 광탈한 독후감

아쉬우니 블로그에 올려본다.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현재는 임신을 한 내가 과거에 결혼과 임신에 대해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는 생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게 결혼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고, 임신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발달 과정 중 내가 결혼과 임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매우 개인적인 사유이다. 나는 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의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무책임한 일이라 여겨졌다.

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복합적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온 모습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과 믿음이 가득한 인생을 사는 인간상을 선호한다.

특히 찰스 스트릭랜드가 그런 인간상 중 하나이다. 타인에게 무례하고 다소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일 수 있으나, 자기 스스로에게는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이라는 것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고 실천할 수 있는 행동력과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혐오하고 경멸해도 괜찮단 말인가요?”

“그렇소. 상관없소.”」

찰스 스트릭랜드는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늘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상관없음.’이 부러웠다. 내가 남들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 했다. 어려웠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다시금 사람들의 눈치와 기분을 살피는 것 같은 나의 태도에 좌절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가야, 너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책을 읽는 동안 배 속의 아이가 내 모습이 아닌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랐다.

하지만 달과 6펜스는 한 인간의 삶과 성격에 대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바라보는 시점에 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얼마나 잡다한 성질로 이루어졌는가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인색한 마음과 웅대함,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것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와 「물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실도 단순히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마치 한 조각의 뼈를 보고 사멸한 동물의 형태는 물론, 그 습성까지 알아내야 하는 생물학자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고나 할까.」 등의 문장은 한 인간에 대한 복합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위대한 예술가이기는 했지만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없었으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했으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면에서 다정함과 어떤 면에서의 냉정함 그리고 어떤 면에서의 책임감과 무책임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평가하고 이야기해도 결국 그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나 역시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점이 있다. 반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에 대한 열정과 고집이 있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낼 때도 있다. 내가 눈치를 본다는 모습 역시 단편적인 모습일 뿐 나는 입체적인 사람이다.

내가 배 속의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엄마처럼 살지 마.’, ‘찰스 스트릭랜드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 ‘~~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같은 말이 아니었다. 내 배 속에 열 달을 품지만 어떤 성격의 아이일지 모르고, 낳아 기른다 해도 아이의 100%를 알고 이해할 수는 없다. 부모가 된 나는 아이가 느끼고 경험하는 아이의 삶 중 단편적인 모습만 보게 될 것이다.

이제 내 몫은 아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얼마나 잡다한 성질로 이루어졌는가를 이해하고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와 아이의 한 모습만 보고 아이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들지 않는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는 것 또한 내 몫이다. 아이의 몫은 그저 그 아이답게 사는 것이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지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잘 살고 있을게. 곧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