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집어든 것은 우연이었다. 사실 도서관에서 집어드는 책 중에 우연이 아닌 책은 별로없다.
이 책은 신간이 아님에도 도서관 신간코너에 꽂혀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집어 들었다.
백치를 읽은 것도 한참 지난 일이라 도스트예프스키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희한했다.
처음 죄와 벌을 빌리고 2주간의 시간동안 나는 상(上)권을 끝내지 못했다.
포기할까 했지만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고, 내용이 주는 짙은 어떤 감정을 정리하고 싶기도 해서 하(下)권을 빌렸고, 이번주에 모두 읽었다.
죄와 벌은 너무 유명한 책이다.
하지만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그냥 뭐,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정도의 내용인가 하는 정도의 추리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유명하지만 그 사람의 글에 대해 흥미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백치를 읽은 이후로 묘하게 친밀감이 생겼던 모양이다.
죄와 벌 역시 백치를 읽었을 때 처럼 진입장벽이 존재했다.
바로 이름이었다. 나는 주인공의 이름을 온전히 외우는데까지고 하권까지 끌고 와야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이름이 헷갈려서 책 제일 앞장을 들춰보아야 했다.
1000여장의 페이지를 읽으면서 주인공과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인지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다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소설을 읽으니 주인공과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러시아 이름이 나의 한국식 이름 인지와 부딪힌 것이다. 여튼 나의 인지적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안했다.
여튼 죄와 벌의 줄거리는 대략적으로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를 하는 노파와 노파의 여동생을 죽이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개인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살인을 행한 뒤에 오는 공포, 혼란, 죄책감, 그리고 살인의 정당화 이런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한다. 더군다나 혈혈단신인 줄 알았던 주인공의 가족들이 살인 직후 등장하게 되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 책을 다 읽는 동안에도 이 주인공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노파는 이(蝨)였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
"나는 다만 이(蝨)를 죽인 것 뿐이야, 소냐, 무익하고 더럽고 해로운 이(蝨)를."
어떤 이의 기준에서 그 살인은 정의로운 것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특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 살인을 행할 때는 매우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살인에 대한 주인공의 동기가 의문스러웠고, 점점 더 납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이 죽음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스스로 강물에 목숨을 던지는 대신 자수를 선택했다. 자수를 종용하는 주변의 사람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스스로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겠다는 결심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주인공은 죄값을 받으며 감옥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마지막에는 성경을 읽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그 인간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한 내용들이 주가 되기 때문에 책의 분량은 매우 방대하지만 사건은 간단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덮고 나서 깨달았다.
인간은 매우 오만하다. 그리고 그 오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자신이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 결론은 나의 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결론이다. 나는 다양한 생물학 책을 접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를 깨달았고, 더 나아가 나 역시 한낱 인간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느끼고 있었다. 특히 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생물학적인 존재이며, 오만할 수 없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죄와 벌의 주인공이 성경을 꺼내어 읽게 되는 모습은 단순히 신을 믿지 않는 주인공이 신을 믿음으로서 안정과 평안을 얻는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에게 의지하게 되는 모습은 노파를 이(蝨)로 취급하여 살인을 행했던 우월한 인간이라는 오만함을 벗어나 한낱 인간일 뿐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보여졌다.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주인공은 죄와 벌을 통해서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이 사람들 다 제정신 아니네.', '도스트예프스키도 제정신 아니네.' 하면서 읽었는데 읽고 나니 왜 이 책이 명작인지, 왜 도스트예프스키를 대단하다고 칭하는지 어렴풋이 내 식대로 알 것 같았다.
인간이라는 오만과 우월함을 벗어나 한낱 인간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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